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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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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시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말이죠.

오늘은 이 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선의에서 출발한 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대부분의 규제와 금지, 제한은 아주 그럴듯한 이유에서 출발합니다.
같은 일을 다음 세대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분명한 선의의 마음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경우는 그 선의가 사람을 살려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규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다음 세대는 경험을 할 수가 없어요.
특히 법이나 강한 규범으로 정해진 경우에는 더 그렇죠.

불법이 될 수 있는 경험 앞에서 다음 세대는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해요.
이건 소심해서도 아니고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에요.
위험대비 효용을 따졌을 때 포기를 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과거에는 친구들끼리 싸웠습니다.
물론 좋은 일은 아니죠.
그래서 학교폭력에 대한 규정이 생겼어요.

그 규정이 만들어질 당시 세대는 이미 알고 있어요. 싸움 전에 어떤 기류가 흐르는지 싸우는 순간에는 감정이 어떻게 폭주하는지 그 이후에 관계가 어떻게 깨지고 어떤 경우에는 화해가 가능한지 이런 경험들 위에 아 이건 선을 넘었다라는 판단이 쌓이게 되고 그런 것들을 규칙으로 막자가 되는겁니다.

근데 다음 세대는 좀 얘기가 다릅니다.
태어나고 나서 활동을 좀 하려고 보니까 친구와 싸움 자체가 애초에 규정 위반이에요.
그래서 아주 작은 마찰의 조짐만 보여도 관계 자체를 포기해버려요. 싸움이 언제 어떻게 왜 커지는지를 모르니까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천 봉쇄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란 사람들이 사회로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상황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피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기 때문인데 사회에서는 불편해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순간이 와요. 말을 안 하면 문제가 드러나지 않겠지만 말을 하면 바로 이렇게 듣습니다.

아 요즘 애들은 말이야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이해할 수가 없네.

MZ라는 말도 결국 같은 맥락이에요.
왜 그러는지를 설명하진 않고 우리랑은 다르다라고 선을 긋는 표현이죠.

여기서 우리가 다시 봐야 할 지점이 있어요. 학교폭력은 분명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마찰은 필요해요.
문제는 이게 규범으로 고정되었을 때 생깁니다.

조심스러운 사람들은 규범 앞에서 점점 위축되는데 정말로 위험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규범을 어길 각오가 되어 있어요.
근데 처벌까지 받는다면 일을 더 크게 벌리겠죠.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법은 더 강해지고 사람들은 더 조심스러워지고 연대는 점점 사라집니다.

이건 일종의 역설이에요.
선의로 만든 규칙이 경험의 공간을 없애고 그 결과 무지가 생기는 구조.

여기서 하나의 개념을 좀 던져볼 수 있어요.
관계에도 샌드박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이 이야기는 관계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에요.
기술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심지어 사랑과 연애조차도 규범이 점점 견고해지는데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뭔가 잘못하면 바로 낙인찍히고 기록으로 남고 설명할 기회조차 없어지는 이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택을 해요.

물론 기술세대 단절이나 문화 갈등, 연애와 결혼 감소 같은 현상을 이 하나의 역설로 전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선의로 만든 규범이 연습 공간을 없애고 있지는 않은지 이건 같이 고민해볼 만한 문제 아닐까요?
완전히 자유롭지도 바로 처벌하지도 않는 공간 실수할 수도 있고 부딪혀볼 수도 있고 그 결과를 감당해보는 작은 연습의 장 말이에요. 우리는 안전을 위해서 많은 걸 막아왔습니다. 그 선택에 틀렸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지워버렸는지 그리고 그 무지를 정말 우리가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이 질문을 한번 던져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보호를 너무 잘한 걸까요?
아니면 아직도 충분하지 않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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