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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된 언어가 없는 이유

한글로 된 언어는 왜 없을까요?
보통 이런 대답을 하시더라구요
“세계 공용어가 영어니까”
그 얘기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제가 좀 더 현실적인 이유를 들려드릴께요

여러분 코딩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언어를 구매해보신적이 있나요?
아마 대부분은 “아니요”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현존하는 모든 언어가 상시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많은 언어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상하죠
언어를 쓰다보면 언어도 버전 업이 되고, 보안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그러는데
언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돈을 버는걸까요?
그 사람들도 월급은 받으면서 일할거 아니에요?

언어는 매출을 따지는 다른 물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점유율이라는 지표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언어에 의존하고 있는지, 이게 중요한 지표에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료잖아요? 라고 생각할 수 있으시겠지만
얘기가 조금 다릅니다

여러분이 개발자로 칩시다, 아니면 개발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어떤 언어를 골라서 서비스를 돌리고 있어요
근데 내가 쓰고 있는 그 언어가 사라진다고 하네요. 언어 개발사가 망한데요. 돈이 없대요
망하게 둘 수 있을까요?

물론, 모든 회사가 반드시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서비스와 인력이
그 언어에 깊게 묶여 있다면,
선택지는 생각보다 단순해집니다.

우리 회사에서 서비스되는 많은 앱들이 해당 언어를 쓴다든가, 우리 회사에서 많은 개발 인력이 해당 언어를 쓴다든가 하게 되면 그 언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게 수지타산에 맞게 됩니다
회사에 있는 개발자들에게 해당 언어를 유지보수하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만
이 사람들은 “이미 누군가가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언어를 보다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지 “언어를 개발하는 개발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언어를 관리할 만큼의 개발자를 찾으려하면 석박사급 고급 인재여야해요. 한명한명이 비싼 인력이죠

차라리 언어를 개발한 개발사에게 투자하는게 낫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해당 언어 재단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언어들 중에는 자바의 오라클처럼 탄탄한 기업을 기반에 두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
그니까 특정 기업이 전담하지 않는 언어들은 해당 언어를 대상으로 한 재단을 갖게 됩니다.
재단이 후원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수지타산을 따졌을 때, 이미 해당 언어를 만들고 유지관리해왔던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맞습니다. 후원을 하는거죠

이렇게 해서 하나의 구조가 완성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이 언어를 계속 쓰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에 유지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는 구조.
이걸 저는 가치에 기반한 생존 사이클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후원은 전체 사용자의 10% 내외가 하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하는 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기도하고 현실적으로는 후원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살아남는 언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얘기가 되요

자, 그럼 이제 한국어로된 언어가 들어올 차례에요.
앞서 프로그램 언어의 생애주기 내용을 통해서 예상하셨겠지만 굳이 정리를 해보자면

언어가 한국어가 되면 사용 집단이 작아진다.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흔히들 얘기하는 “영어가 세계 공용어니까”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좀 다른 의미로 느껴지죠?
맞습니다. 사실상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로 사용자가 축소되기 때문에 잠재적 사용자가 줄어들고, 이건 곧 점유율 최대치가 낮아진다는 얘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만들어서 운영한다고 가정한다면 바로 다음 문제에 부딫힙니다.
후원 싸이클이 굴러가지 않는거죠.
원래도 사람들은 후원을 잘 안하는데, 모집단 수 자체가 적으니 모인 돈으로 운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굳이 선택할 이유도 없는 요소 중 하나로는 컴퓨터 입장에서 한글은 조합형 언어로, 2바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불리한 선택지를 고를 필요는 없어보이죠. 물론 요즘은 UTF-8 같은 것으로 다 섞여 쓰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 문제는 없겠지만 코드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동완성 같은 기능을 구현할 때 영어보다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게 될 겁니다.

한글로 된 프로그래밍 언어가 없는 이유는 ‘가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의 생태계 안에서는 굳이 그 선택을 할 만큼의 구조적 이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