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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돌아야 한다

돈은 왜 돌아야 하는가

— 부자를 싫어하는 마음에 대하여

사람들은 왜 부자를 싫어할까?

흔히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질투나 상대적 박탈감을 이야기한다. “나는 돈이 없는데 저 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물론 그런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부자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돈이 특정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모여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돈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을 넘어, 사회에서 상당히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돈은 돌아야 한다

돈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할 때 흔히 “돌고 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확한 어원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돈의 기능을 생각하면 꽤 재미있는 표현이다.

돈은 그 자체로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돈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을 다른 무언가와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식사를 한다.

식당 주인은 그 돈으로 재료를 산다.

재료를 공급하는 사람은 그 돈으로 다른 물건을 산다.

그 물건을 파는 사람은 다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그리고 그 노동자는 다시 소비한다.

이렇게 돈은 사람 사이를 이동한다.

그래서 돈은 단순한 재산이라기보다 사회 안에서 교환을 발생시키는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돈이 움직이는 곳에서는 거래가 발생하고, 거래가 발생하는 곳에서는 노동과 생산과 소비가 연결된다.

결국 돈은 사회의 여러 활동을 연결하는 일종의 순환 장치가 된다.

돈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될 때 비로소 경제적 활동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가난이란 무엇일까?

보통 가난을 “돈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정의해볼 수도 있다.

가난이란 돈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도달하는 경로가 끊어진 상태가 아닐까?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갑자기 100만 원을 준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당장 100만 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돈을 모두 사용하고 난 뒤 다시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반대로 그 100만 원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도구가 되거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거나, 이동수단이나 작업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사용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번의 돈이 다시 다른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꽤 중요하다.

돈을 한 번 받는 것과 돈이 계속 들어오는 구조를 갖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빈곤을 단순히 돈의 절대량으로만 보는 대신, 돈의 순환 구조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물론 현실의 빈곤에는 교육, 건강, 가족환경, 자산, 지역, 제도 등 수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사람에게 돈이 다시 돌아오는 경로가 존재하는가?”


돈의 회전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

그렇다면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돈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사람이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자산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그 수익으로 다시 자산을 늘리고, 그 자산에서 다시 수익이 발생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과 자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자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부자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돈을 금고에 넣어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주식, 채권, 기업, 부동산 등의 형태로 보유된 자산 역시 경제활동과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부자는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 돈을 사용할 수 없다.”

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부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직관적인 불쾌감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돈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월급을 받고,

밥을 사고,

월세를 내고,

물건을 사고,

다시 일을 한다.

내가 가진 돈이 누군가에게 가고, 그 사람의 돈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간다.

반면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는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돈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는 부가 이렇게 보일 수 있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나는 돈이 없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가진 돈이 내게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단순한 질투 이상의 감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


돈이 생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돈이라는 것의 특성이 중요해진다.

돈이 단순한 점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임에서 1억 골드를 가진 사람이 있어도 내가 그 골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현재의 사회에서 돈은 식량, 주거, 의료, 교육, 이동 등 수많은 생존 조건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소비할 수 있는 것이 적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때로는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감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부가 단순한 사치품의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가진 돈만큼 다른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는 식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실제 경제적 관계를 그대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과 생존이 강하게 연결된 사회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심리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아지면 돈의 의미도 달라진다

여기서 재미있는 변화가 하나 발생한다.

돈이 부족할 때 돈은 생존 수단이다.

“돈이 필요하다.”

이 말은 곧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라는 의미와 거의 겹친다.

하지만 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돈은 더 이상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

돈으로 노동을 살 수 있다.

돈으로 공간을 살 수 있다.

돈으로 정보를 살 수 있다.

돈으로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있다.

그리고 더 큰 규모에서는 기업이나 시장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즉 돈은 어느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수단에서 선택지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변한다.

그리고 더 극단적으로 가면,

다른 사람의 생존 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

이 된다.

이때 돈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권력의 성격을 갖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자를 싫어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이렇게 보면 “왜 사람들은 부자를 싫어하는가?”라는 질문에 조금 다른 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들이 반드시 부자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돈이 특정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고, 그 사람이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선택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

일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은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수단”

이지만,

엄청난 부를 가진 사람에게 돈은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권한”

이 된다.

그리고 그 둘이 같은 사회 안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상당한 긴장감이 발생한다.


AI는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까?

이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AI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까지 사회의 기본적인 경제 순환은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노동 → 임금 → 소비 → 기업의 매출 → 다시 노동

사람이 일을 한다.

기업은 사람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사람은 그 임금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기업은 그 돈으로 다시 사람을 고용한다.

이 과정에서 돈이 계속 순환한다.

그런데 AI가 인간의 노동을 점점 더 많이 대신한다면 이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 자체는 생산성 측면에서 매우 큰 변화다.

하지만 동시에 질문이 하나 생긴다.

사람이 노동을 통해 돈을 벌 기회가 줄어든다면, 생산된 물건을 누가 구매하는가?

AI가 아무리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도 그것을 구매할 사람이 없다면 생산은 경제적 의미를 잃는다.

결국 문제는 생산능력만이 아니다.

돈이 계속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함께 등장한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없애는 대신 생존 비용을 낮춘다면

여기서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가능성이 있다.

AI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생산성을 크게 높인다면, 인간에게 필요한 노동의 양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비용 자체가 낮아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AI와 자동화가 식량 생산, 물류, 제조, 교육, 소프트웨어 등의 비용을 지속적으로 낮춘다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의 양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 구조가 가능해진다.

현재는 대체로

일하지 못한다 → 돈이 없다 → 생존하기 어렵다

라는 연결이 강하다.

하지만 자동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어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크게 낮아진다면,

일하지 못한다 → 필요한 돈 자체가 적다 → 생존할 수 있다

라는 구조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이중재화론과도 연결된다.

생산은 점점 더 자동화되고,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화는 매우 낮은 비용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AI는 단순히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돈에 의존해야 하는 정도를 낮추는 기술

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그 혜택이 자동으로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생산성의 증가가 사람들의 생존 조건으로 어떻게 연결되는가일 것이다.


돈은 부족할 때 생존이고, 넘칠 때 권력이다

결국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사람들은 부자를 싫어할까?

나는 이 질문을 부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돈은 사회를 움직이는 교환의 수단이다.

그리고 돈이 생존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돈의 이동 자체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돈이 부족한 사람에게 돈은 생존이다.

돈이 충분한 사람에게 돈은 선택권이다.

그리고 돈이 아주 많은 사람에게 돈은 다른 사람의 선택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래서 돈의 의미는 양에 따라 달라진다.

돈이 없을 때 돈은 생존이다. 돈이 충분할 때 돈은 자유다. 돈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돈은 권력이 된다.

어쩌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바로 이 마지막 단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돈을 단순히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보다,

돈이 사회 안에서 얼마나 잘 회전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그 회전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돈이 생존과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를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누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다음 질문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돈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돈은 원래 돌아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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