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재화론 3부
그런데 인간들은 가만히 있을까?
앞에서는 꽤 이상적인 미래를 상상해봤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생산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하위 재화가 지급된다.
그리고 그 이상의 삶을 원하는 사람은 상위 재화를 얻어서 더 많은 것을 선택한다.
생존과 욕망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시스템을 실제 인간 사회에 넣는 순간에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는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빠르게 자동화될 것이다.
공장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나,
단순한 사무 업무 같은 것은 비교적 빠르게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농업은 어떨까?
건설은?
물류는?
사람을 직접 돌보는 일은?
현장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온갖 예외적인 상황은?
아마 산업마다 자동화되는 속도가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오랫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사람의 일은 이미 AI가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의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사회.
그리고 이때 생존을 보장하는 하위 재화를 도입하면 문제가 생긴다.
완전 자동화 사회에서는 해방일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하위 재화라는 개념은 완전 자동화된 사회에서는 상당히 자연스럽다.
사람이 생산하지 않아도 기계가 생산하고,
기계가 생산한 것을 다시 기계가 운반하고,
AI가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사람이 반드시 노동을 해야만 생존할 이유가 약해진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장치
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자동화가 덜 된 상태에서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도기의 기본 지급은 오히려 압력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농장에서 아직 사람이 직접 일해야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농장에서 일할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
농장주는 더 높은 상위 재화를 지급해야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식량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건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물류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돌봄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즉,
생존을 보장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더라도, 생산에 필요한 노동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둘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완전 자동화 이후에는 해방일 수 있는 제도가,
자동화가 진행 중인 과도기에서는 오히려 생산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고실험에서 자동화는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다.
시스템이 성립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그런데 현실은 과도기를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미래에 도착하는 방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축하합니다. 오늘부터 인간 노동의 90%가 필요 없습니다.”
라고 선언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자동화가 조금씩 진행될 것이다.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직업은 남고,
어떤 직업은 AI와 사람이 같이 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는 계속 변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 일찍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도입하면,
자동화가 충분하지 않은데 소비만 보장되는 이상한 상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은 오히려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달한 뒤에야 가능한 제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누가 그 시점을 결정할까?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 시스템을 좋아할 리도 없다
여기서부터 조금 더 불편한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사람들은 아마 이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혹은
“국가가 먹고사는 것까지 책임지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노동과 공동체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가 기존 사회에서 실제로 사람들을 돕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프라가 구원을 대신한다면?
조금 극단적으로 생각해보자.
어떤 사회에는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자.
누군가는 음식을 나눠주고,
누군가는 주거를 지원하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연결하고,
누군가는 기부를 받고,
누군가는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들을 돕는다.
그런데 어느 날 국가가 이렇게 말한다.
“기본적인 식사와 주거는 이제 모든 사람에게 보장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람을 돕는 행위의 상당 부분이 필요 없어질 수 있다.
이건 굉장히 좋은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굶는 사람이 줄어들 테니까.
그런데 동시에 이상한 문제가 생긴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던 조직은 어떻게 될까?
구원을 반대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새로운 제도에 반대한다고 해보자.
그 사람이 정말 가난한 사람을 걱정해서 반대할 수도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은 위험하다.”
“사람이 스스로 살아갈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이유일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이 오랫동안 해오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반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바깥에서 그 둘을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특정 조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을 돕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역할과 산업과 정체성이 되었을 때, 그 역할을 필요 없게 만드는 제도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종교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종교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문제가 생긴다.
종교에는 여러 형태의 자선과 구제 활동이 존재한다.
그런데 국가가 생존 자체를 보장해버리면,
전통적으로 종교나 민간단체가 담당하던 구제의 일부가 필요 없어질 수 있다.
물론 종교의 역할이 생존 지원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의미를 주거나,
공동체를 만들거나,
정신적인 위안을 제공하는 것처럼
생존과 직접 관계없는 역할도 많다.
그래서 종교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역할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모든 돈을 기록한다면 현금은 특별해진다
앞에서 상위 재화는 정식으로 신고된 소득과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돈의 이동도 기록되어야 한다.
A가 B에게 돈을 주고,
B가 그것을 소득으로 신고하면,
하위 재화가 다시 상위 재화로 바뀐다.
그런데 기록되지 않는 거래가 존재한다면?
예를 들어 물리적인 현금 같은 것이 계속 존재한다면,
그 현금은 상당히 특별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시스템 밖에서 이동할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범죄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동할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탈세가 없어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이다.
현금 거래를 할 수도 있고,
가짜 사업체를 만들 수도 있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거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고판 것처럼 꾸밀 수도 있다.
즉,
화폐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든다고 해서 인간의 우회 욕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범죄는 제도에 맞춰 형태를 바꿀 뿐일 수도 있다.
그러면 현금을 없애면 될까?
그렇다고 모든 물리적인 돈을 없애버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국가가 모든 경제활동을 기록하게 된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했는지,
누가 무엇을 구매했는지,
어떤 재화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이것은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강력한 감시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사고실험에는 처음부터 하나의 모순이 따라붙는다.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수록,
그 시스템은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이 알아야 할수록,
개인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도 커진다.
부자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이 있다.
현재 사회에서 이미 엄청난 자산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만든다고 해서 기존의 상위 재화를 모두 없애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이미 상당한 상위 재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계속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위 재화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자산이라면,
많이 가진 사람이 그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러면 새로운 시스템에서도 부의 격차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이 부분도 중요한 것 같다.
하위 재화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지급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상위 재화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기본 주거에서 살아가고,
누군가는 엄청나게 좋은 집에서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평범한 식사를 하고,
누군가는 아주 비싼 음식을 먹을 것이다.
결국 상위 재화는 여전히 차이를 만든다.
다만 그 차이가 적어도
“굶느냐 먹느냐”
의 차이는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 차이를 그냥 받아들일까?
아마 여기서 또 인간적인 문제가 등장한다.
사람은 절대적인 생활 수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한다.
내가 기본적인 생활을 충분히 누리고 있어도,
옆 사람이 훨씬 좋은 차를 타고 있으면 부러울 수 있다.
내가 충분히 넓은 집에 살아도,
누군가 훨씬 좋은 집에 살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SNS가 있다면 그 차이는 훨씬 더 잘 보일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사회에서도
시기와 질투가 사라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새로운 신분제가 생길 수도 있다
지금은 돈이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미래에도 상위 재화가 일종의 지표가 될 수 있다.
누가 얼마나 많은 상위 재화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사람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이런 정보가 사람들의 평가에 사용될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재산 순위표처럼
상위 재화 보유량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통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거나 조롱하는 문화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법으로 막을까?
여기서 또 고민이 생긴다.
하위 재화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누군가 조롱한다고 해보자.
그것을 법으로 금지해야 할까?
상위 재화를 많이 가진 사람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도 금지해야 할까?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행동을 법으로 전부 교정하려고 하면,
사회가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하게 된다.
누군가를 비웃는 문화가 생길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런 사람을 좋지 않게 보는 문화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 변화는 법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낼 수도 있다.
결국 어떤 사회가 될지는 그 사회의 사람들이 결정하는 부분도 크다.
그런데 포퓰리즘이 등장한다면?
이런 시스템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을 가능성도 낮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질문할 것이다.
“왜 하위 재화는 이만큼만 주는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은 상위 재화를 가지고 있는가?”
“왜 내가 사는 곳에서는 이 재화를 사용할 수 없는가?”
“왜 어떤 서비스는 기본 재화로 이용할 수 없나?”
그리고 정치가 존재하는 한,
이런 질문은 정치적인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하위 재화를 더 많이 달라는 요구가 나올 수도 있고,
상위 재화를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자는 요구도 나올 수 있다.
반대로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한다는 반발도 나올 수 있다.
결국 새로운 화폐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정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가 싸워야 할 새로운 경계가 생길 뿐이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반발
여기서 조금 더 극단적인 상상을 해보자.
이 시스템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공짜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을 망친다.”
“생존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은 잘못됐다.”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도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미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하는데 왜 사람이 굶어야 하지?”
“생존을 위해 의미 없는 일을 강요할 이유가 있나?”
결국 이 문제는 경제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가치관의 충돌이 된다.
그리고 노동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반론이 가능하다.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가 정말 돈뿐일까?
아닐 수도 있다.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만족을 얻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돈을 주지 않아도 자기 프로젝트를 계속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직업 그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동화가 노동을 없애더라도,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그때의 “일”은 지금과 상당히 다른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자선은 사라질까?
이런 사회에서 자선단체는 어떻게 될까?
이것도 간단하지 않다.
생존 자체가 보장된다면,
적어도 “굶고 있는 사람에게 밥을 준다”는 형태의 자선은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되지만 어떤 사람의 상위 재화가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있다면,
누군가 그 사람에게 상위 재화를 기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선의 대상이
“생존할 수 없는 사람”에서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것은 지금의 자선과 꽤 다른 모습일 것이다.
결국 ‘구제’의 의미가 달라진다
지금은 누군가를 돕는다는 말에
먹을 것을 주고,
집을 마련해주고,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이 포함된다.
하지만 생존이 보장된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이 이미 시스템에 들어가 있다.
그러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은 굉장히 큰 변화다.
국가가 사람을 살게 해주고,
개인은 다른 사람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누군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아무리 AI와 로봇이 발전한다고 해도,
물질이 갑자기 무한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기와 자원도 필요하고,
공장도 필요하고,
서버도 필요하고,
토지도 필요하다.
기계가 생산한다고 해도 생산 설비를 누군가는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
결국 하위 재화를 지급한다는 것은
사회가 생산한 것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라는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이 시스템은 단순히 화폐를 바꾸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산 구조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꽤 단순한 생각이었다.
돈을 두 종류로 나누자.
하나는 살아가기 위한 돈.
하나는 원하는 삶을 위한 돈.
그런데 여기까지 밀어붙이고 보니,
돈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자동화가 필요하고,
생산이 필요하고,
세금 제도가 필요하고,
금융 시스템이 필요하고,
개인정보와 감시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기존의 자산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AI와 로봇은 꽤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새로운 화폐 시스템도 설계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위 재화와 상위 재화를 구분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그렇게 쉽게 설계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부러워할 것이고,
누군가는 시스템에 반대할 것이다.
누군가는 시스템의 허점을 찾을 것이고,
누군가는 허점을 이용할 것이다.
누군가는 사람을 도우려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도움을 자신의 권력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정말 순수하게
“나는 이런 사회가 싫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고실험은 실패한 걸까?
여기까지 보면 이 시스템에는 문제가 너무 많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생존과 욕망을 분리하면 깔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나씩 밀어붙여보니,
자동화 문제도 나오고,
노동 문제도 나오고,
부의 격차도 나오고,
범죄도 나오고,
현금도 나오고,
감시도 나오고,
종교와 자선의 역할도 나오고,
사람들의 질투와 반발도 나온다.
결국 하나의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돈의 구조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돈과 연결된 인간 사회 전체를 건드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아직 모르겠다
이 사고실험을 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그 뒤에서 새로운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생존을 보장하면 노동 문제가 나온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면 생산 문제가 나온다.
생산 문제를 해결하면 자원 문제가 나온다.
돈을 추적하면 감시 문제가 나온다.
감시를 줄이면 탈세와 범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부의 격차를 인정하면 시기와 정치적 갈등이 생길 수 있고,
그것을 줄이려고 하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해볼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런 사고실험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래에 정말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 대부분을 대신하게 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비슷한 질문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인간이 반드시 일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가 된다면,
그때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과 욕망을 같은 돈으로 다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그냥 여기까지 생각해본 것이다.
돈을 두 종류로 나누면 어떨까.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의 재화로 떼어내고,
그 이상의 욕망은 다른 재화로 남겨두면 어떨까.
그리고 그 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을 원하게 될까.
어떤 사람은 자유를 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돈을 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가족을 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작품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
그 모든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하려는 순간부터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될 것이다.
결국 미래의 문제는 돈을 어떻게 나누느냐보다,
생존이 더 이상 인간의 가장 큰 걱정이 아니게 되었을 때 우리가 서로의 삶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
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어려운 것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먹고사는 걱정이 사라진 뒤에도 서로를 통제하려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아직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