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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재화론 2부

먹고사는 게 해결된 인간은 무엇을 원할까?

1부에서는 돈을 두 종류로 나눠보았다.

하나는 살아가기 위한 하위 재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상위 재화.

이런 구조가 가능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했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상당 부분 대신해서, 적어도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생산이 인간의 노동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지금의 인간에게 돈은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돈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돈이 없으면 밥을 먹기 어렵고, 집을 구하기 어렵고, 병원에 가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생존과 거의 붙어 있다.

우리는 흔히

“돈을 벌어야 한다.”

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사실 여러 가지 의미가 섞여 있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기도 하고,

더 좋은 것을 사고 싶어서 벌기도 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벌기도 하고,

미래가 불안해서 벌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돈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성공의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생존에 필요한 돈이 이미 주어진다면?

돈이 없는 것이 곧바로 생존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개념도 조금 이상해진다.


실패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사회에서 실패는 꽤 무서운 단어다.

사업에 실패하면 빚이 생길 수도 있고,

취업에 실패하면 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고,

돈을 벌지 못하면 결국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를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생존이 보장된다면?

사업에 실패했다고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도 당장 먹을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하지 않아도 집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위 재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원하는 생활을 하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생존 자체의 실패와 개인적인 실패가 분리된다.

이 차이는 꽤 크다.


그렇다면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은 돈만 잃는 것이 아니니까.

시간을 잃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만든 것이 아무에게도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은 꽤 아플 수 있다.

그래서 생존이 보장된다고 해서 인간이 실패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실패의 종류가 달라질 수는 있다.

지금의 실패가

“이걸 실패하면 먹고살 수 없다.”

에 가까웠다면,

그 사회에서의 실패는

“나는 이것을 원했는데 이루지 못했다.”

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원할까?

여기서부터는 꽤 개인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는 좋은 집을 원할 것이다.

누군가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게임을 만들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유명해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을 수도 있다.

생존이 보장된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존 때문에 뒤로 밀려나 있던 욕망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


돈이 아닌 것들이 중요해질 수도 있다

조금 더 밀어붙여 보면 재미있는 변화가 생긴다.

지금은 돈이 부족하면 삶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굉장히 강력한 지표가 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받는다면 돈의 의미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상위 재화를 많이 가진 사람은 여전히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돈이 없으니 죽는다.”

라는 관계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돈 외의 것에도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친구가 많은 것.

사랑받는 것.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는 것.

혹은 그냥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


관계가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다.

생존이 보장되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지금은 경제적인 능력이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기능이 국가와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어느 정도 대체된다면,

사람을 사람에게 필요하게 만드는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재미있는 사람.

매력적인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

이런 것들이다.


어쩌면 ‘성공’의 모습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그런데 돈이 생존과 분리된다면,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측정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얼마나 좋은 작품을 남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이를 많이 키우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평생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을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가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혼자 살아도 된다

생존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혼자 사는 선택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고,

유명해지지 않아도 되고,

큰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하위 재화로 생활하면서 조용히 살다가 죽는 것도 하나의 삶이다.

그 사람이 반드시 실패했다고 말할 이유는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실패자로 만드는 기준은 결국 말하는 사람 자신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패’는 개인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실패의 의미가 조금 바뀔 가능성이 있다.

국가가

“당신은 실패했습니다.”

라고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나는 이것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

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결혼이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창작이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돈이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생존이 보장된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목표를 선택할 여지가 늘어난다는 뜻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더 많이 만들까?

여기서 다시 창작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은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도 위험이 따른다.

게임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사지 않으면 돈을 잃는다.

책을 썼는데 아무도 읽지 않으면 시간만 날릴 수 있다.

그림을 그렸는데 팔리지 않으면 생활비를 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성공할 것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생존이 보장된다면?

조금 이상한 것을 만들어볼 수 있다.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게임을 만들어볼 수도 있고,

쓸모없어 보이는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고,

사업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어 보이는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성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패한 작품에도 가치가 있을까?

여기서 또 하나의 이상한 생각이 가능해진다.

실패한 작품 자체가 데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고 해보자.

그 게임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사업적으로는 완벽한 실패다.

그런데 AI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형태의 게임은 실제로 출시되었지만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라는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예측된 실패와 실제로 발생한 실패는 다르다.

AI가

“이런 게임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

라고 예측하는 것과,

실제로 누군가가 만들었는데 정말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데이터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패한 창작물에도 아주 작은 가치가 생길 수 있다.


실패를 팔 수 있는 사회

조금 더 과감하게 생각하면,

실패한 창작물을 AI 학습 데이터로 판매하는 시장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성공한 작품을 팔고,

누군가는 실패한 작품을 판다.

성공한 작품은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고,

실패한 작품은 아주 적은 금액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재미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실패했지만 완전히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든 것이 세상에서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만들었더니 실제로 실패했다.”

라는 기록 자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악용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다.

당연히 사람들이 악용할 것이다.

“실패하면 돈을 준다고?”

그렇다면 일부러 대충 만든 작품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서 실패시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AI 학습 데이터 시장에 쓰레기 데이터가 넘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평가 기준이 필요해진다.

정말 의미 있는 실패인지,

그냥 돈을 받기 위해 만든 실패인지,

실제로 사람들이 시도해볼 만한 실험이었는지,

이런 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시작된다.

누가 그 가치를 판단할 것인가?


인간이 모든 것을 보존해야 할까?

창작물이 엄청나게 많아진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모든 작품을 원본 그대로 보존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하루에 하나씩만 무언가를 만든다고 해도,

수십억 명이 존재한다면 엄청난 양의 기록이 쌓인다.

그리고 미래의 사람들은 그 모든 기록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야 할까?


미래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여기서 나는 기록을 몇 단계로 나누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기록

원본을 그대로 보존한다.

보존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기록

썸네일이나 표지와 함께 기본적인 정보와 설명을 남긴다.

평범한 기록

평가나 리뷰, 제작자, 날짜 같은 메타데이터를 남긴다.

거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 기록

최소한의 정보만 남긴다.

예를 들어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누가 좋아했는지 몇 명이 봤는지

정도만 남겨둘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을 똑같은 비용으로 보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누가 결정해야 할까?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긴다.

전문가에게 맡길까?

국가가 결정할까?

유명한 평론가가 결정할까?

AI에게 맡길까?

나는 오히려 AI가 상당 부분 맡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직접 문화의 보존 여부를 결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누가 어떤 문화를 남길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 권력이 너무 크다.

반면 AI가

“이 기록은 미래에 참고할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고 판단하고,

원본 대신 낮은 해상도의 기록만 보존하는 식이라면 조금 다른 구조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투표한다면?

더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미래에 무엇을 남길지를 사람들이 직접 투표하게 할 수도 있다.

전문가라고 해서 특별한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전문가든,

그냥 한 사람은 한 표.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작품이 좋은가?”

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가 많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아주 어린 아이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도 애매하다.

하지만 이 투표의 결과는 현재의 정치적 의사결정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남긴 것을 미래가 지울 수도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미래 세대가 다시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6년의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미래에 남기기로 결정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50년 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이건 이제 남길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삭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기록 자체가 하나의 역사가 된다.

우리가 무엇을 남겼는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가 무엇을 지우기로 했는지도 기록에 남는다.

어쩌면 이것도 역사일 것이다.


역사에는 실수도 남는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조금 재미있는 관점이 생긴다.

우리가 미래에 남길 것을 잘못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반드시 나쁜 일일까?

예를 들어 2026년에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대대적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는데,

100년 뒤 사람들이 그걸 보고

“도대체 왜 이걸 남긴 거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도 역사다.

2026년의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

그 판단 자체가 미래 세대에게 하나의 정보가 된다.

그래서 역사라는 것은 반드시 잘 정리된 위대한 기록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지도 역사니까.


결국 생존이 보장된다는 것은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돈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위 재화와 상위 재화를 나누고,

생존에 필요한 것은 보장하고,

그 이상의 욕망은 개인이 책임지는 구조.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간다.

생존이 보장되면,

사람은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들 수도 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을 만들 수도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무의미한 것들까지 쌓여서 하나의 시대를 만든다.


인간의 의미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으니까

생존이 보장된 사회에서 인간이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에 이름을 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용히 살다가 죽어도 된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을 만들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엄청난 작품을 만들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부자가 되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냥 오늘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생존이 보장된다는 것은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선택할 여지를 주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도 이상한 문제가 남는다

사람이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정말 모두가 자유롭게 행복해질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은 돈만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더 유명한지,

누가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지,

누가 더 좋은 작품을 만들었는지,

누가 더 매력적인지,

누가 더 많은 것을 남겼는지.

사람은 아마 다른 것들을 가지고도 계속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비교는 새로운 갈등을 만들 수도 있다.

어쩌면 생존 경쟁이 줄어든 자리에

다른 형태의 경쟁이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또 다른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지금까지는 꽤 이상적인 미래를 생각해봤다.

AI와 로봇이 충분히 발전했고,

생존에 필요한 생산도 안정되어 있고,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게 미래로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산업은 자동화될 것이고,

어떤 산업은 여전히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상위 재화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기본적인 하위 재화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구조를 모든 사람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실제 인간 사회에 가져왔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사람들이 그 해결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때부터는 조금 더 불편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다음에는 이 이상적인 시스템을 실제 인간 사회에 가져다 놓아보자.

그리고 인간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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