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곧 책임이다
관계는 책임이고, 계약은 관계를 기록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여러 가지 관계가 있습니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관계라는 게 단순히 서로 얼마나 친한지를 나타내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관계에는 그 관계에 맞는 책임의 범위가 있다고 생각해요.
친구라면 친구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같이 놀아주고,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서로를 챙기는 것.
연인이 되면 책임의 범위가 조금 더 넓어집니다.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해준다거나, 서로의 감정에 조금 더 깊이 관여한다거나.
그리고 결혼이라는 관계가 되면 그 책임은 법적인 영역까지 확장됩니다.
재산이나 생활, 가족관계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서로가 서로의 공식적인 보호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관계라는 건 결국 서로에게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정하는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조금 확장해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 하나 연결됩니다.
바로 계약입니다.
우리는 계약이라고 하면 조금 무서운 것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서에 작은 글씨로 뭔가 잔뜩 적혀 있고,
“이거 잘못 사인하면 큰일 난다.”
같은 이미지도 있죠.
물론 실제로 계약은 법적인 책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신중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계약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계약은
“우리는 공식적으로 어떤 관계인가?”
를 정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와 직원의 계약을 생각해봅시다.
계약서에는
회사는 돈을 지급하고, 직원은 정해진 업무를 수행한다.
같은 내용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것을 조금 다르게 읽어보면,
“너와 나는 이런 관계야.”
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에게 이런 것을 제공하고, 너는 나에게 이런 것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것을 언제까지 하고, 각자가 책임져야 할 범위는 여기까지다.
즉 계약은 관계의 모습을 공식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관계증명서와 계약서가 묘하게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이 사람은 이 사람의 배우자다.”
“이 사람은 이 사람의 자녀다.”
같은 관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계약서는
“이 두 사람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이런 책임을 나누는 관계다.”
라고 기록하는 거죠.
물론 둘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제도지만,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공식적으로 부를 수 있게 만든다.”
라는 관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계약은 대부분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작성된다는 거예요.
미래의 일을 약속하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개발 일을 계약한다고 해봅시다.
처음에는
“이 정도 기능이면 이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이만큼의 돈을 받는다.”
라고 계약하죠.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해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많아질 수도 있고, 상대방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써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예상보다 일이 적어질 수도 있겠죠.
즉 계약이라는 것은 아무리 잘 작성해도 미래에 대한 예측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저는 사람들이 서로를 “챙겨주는” 행동을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계약상으로는
“100만 원을 지급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상대방이 생각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계약은 계약인데, 이번에는 네가 생각보다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내가 좀 더 챙겨줄게.”
보너스를 줄 수도 있고, 선물을 할 수도 있고,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습니다.
이걸 단순히 호의라고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관계를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금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처음 계약했을 때 우리가 예상했던 책임과 실제로 관계 안에서 발생한 기여 사이에 차이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그 차이를 사후적으로 보정하는 거죠.
계약서를 다시 쓰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존 계약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실제로 해보니까 네가 이것까지 해줬네. 그걸 계약서에 적힌 것만큼만 받아가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아.”
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선물이나 보너스 같은 것도
관계의 보정값
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계약은
“앞으로 이렇게 하자.”
라고 말합니다.
보수는
“약속했던 책임에 대해서 이것을 줄게.”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물이나 보너스는
“실제로 해보니까 네가 생각보다 더 해줬네.”
라고 말하는 겁니다.
물론 실제 선물의 이유가 항상 이런 것은 아닙니다.
감사해서 줄 수도 있고, 좋아해서 줄 수도 있고, 그냥 주고 싶어서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관계라는 관점에서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게 재미있는 건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계약대로만 행동하는 관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100만 원 계약을 했으면 100만 원을 주면 됩니다.
계약서에 적힌 일을 했다면 그것으로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다면,
“계약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라고만 하는 관계와
“계약은 계약인데, 이번에는 네가 많이 해줬으니까 내가 좀 챙겨줄게.”
라고 하는 관계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후자의 행동에는 어쩌면 이런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나는 너와의 관계를 계약서에 적힌 최소한의 교환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아.”
이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람이 관계에서 지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계속 계약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냥 도와준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의무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결국 이런 말이 나오겠죠.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해?”
그 순간 문제가 되는 건 단순히 돈이나 노동량만이 아닐 겁니다.
관계의 책임 범위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래서 저는 계약이라는 것을 인간관계와 반대되는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약은 오히려 관계를 명확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책임지기로 했다.”
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경계가 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넘어선 배려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계약은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 하자.”
라고 말하고,
선물은
“실제로 해보니 네가 이것까지 해줬구나.”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의 차이가 계속 커진다면 다시 계약을 수정할 수도 있겠죠.
결국 제가 생각하는 관계는 사람을 묶어놓는 무언가가 아니라,
서로에게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정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친구는 친구로서 책임지고, 연인은 연인으로서 책임지고, 가족은 가족으로서 책임집니다.
그리고 계약 역시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책임을 서로 나눌 것인지 기록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계약은 사람 사이의 인간미를 없애는 문서가 아니라,
어쩌면 오히려
“우리가 어디까지 약속했는가”를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배려도 더 선명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계약대로 했으니 끝.”
과
“계약은 계약이고,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좀 챙겨줄게.”
그 사이에는 단순히 돈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건
“나는 이 관계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라는 또 하나의 표현일 수도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