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물과 저작권리
AI가 만든 것은 누구의 것인가
지난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AI로 그렇게 쉽게 만들어진 것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그런데 이 질문을 하다 보면 조금 이상한 지점에 도착합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아이디어는 누구의 것인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이 문제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주 재미있는 게임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이런 게임을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예전에는 이게 꽤 큰 차이였습니다.
아이디어를 실제 게임으로 만들려면
기획을 해야 하고,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고,
그림을 그려야 하고,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서버도 필요할 수 있고,
사람을 모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듭니다.
아이디어 하나와 실제로 작동하는 게임 하나 사이에는
굉장히 큰 간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작권도
대체로 그 간격을 전제로 생각해왔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 그 자체와
그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이것도 꽤 합리적입니다.
“내가 먼저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이 생각은 영원히 내 것이다.”
라고 해버리면
다른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막아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간은 생각보다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누군가가 만든 적 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면 몇십 년 전에 이미 누군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놓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AI가 여기에 이상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아이디어와 구현 사이의 간격을 줄여버리는 겁니다.
예전에는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라고 생각한 다음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AI에게 설명하고,
코드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그림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문제를 고쳐달라고 하면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적어도 작동하는 형태까지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과
작동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그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만약 구현이 거의 공짜가 된다면 어떨까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데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요.
그때도 우리는
“아이디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구현이 중요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구현이 쉬워질수록 아이디어가 더 비싸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디어 자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제가 오늘 아주 재미있는 게임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누군가가 그 글을 읽고
AI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어줘.”
그리고 정말로 게임이 나왔습니다.
제가 직접 만들었다면 몇 년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게임이
누군가에게는 며칠,
어쩌면 그보다 짧은 시간 만에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디어는 내 것이니까 만들지 마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가 제 아이디어이고,
어디부터가 상대방의 창작일까요?
물론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그러니까 아이디어에도 저작권을 줘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바꾸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다만 저는
창작의 비용 구조가 바뀌고 있다
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와
창작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이
완전히 달라진다면,
우리가 창작자를 보호하는 방법도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더 재미있는 미래를 하나 상상해봅니다.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저작권이 뭐가 중요하지?”
“그냥 엄청나게 많이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AI에게 계속 시킵니다.
캐릭터를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세계관을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게임을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하루에 수백 개,
수천 개씩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세상에 풀어버립니다.
대부분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이상하게 인기를 얻습니다.
어떤 캐릭터 하나가 사람들의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이 그 캐릭터를 따라 그리기 시작하고,
밈이 생기고,
게임이 만들어지고,
2차 창작이 생기고,
사람들이 그 캐릭터의 이름을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그 캐릭터를 소유하고 있는가와
사람들이 그 캐릭터를 누구의 것으로 기억하는가가
달라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중에 와서
“사실 내가 이 캐릭터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주장한다고 해봅시다.
법적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 캐릭터는 원래 저 플랫폼에서 봤는데?”
“저 사람이 만든 캐릭터 아니었나?”
“왜 갑자기 당신이 주인이지?”
법적인 소유와
사람들의 기억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유권이 곧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때로는 법적인 소유권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어떤 캐릭터가 누구에게서 처음 등장했는지,
어떤 밈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어떤 문화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사람들은 법전을 읽지 않습니다.
그냥 기억합니다.
“이거 그 사람이 처음 보여준 거잖아.”
물론 이것을 법적인 의미의
“문화적 저작권”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 권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조금 다릅니다.
법적으로 소유하지 않아도 문화적으로 기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AI 시대에는
이것이 점점 중요해질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제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는
점점 쉬워질 테니까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비슷한 것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똑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동시에 여러 사람이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누가 처음 세상에 보여줬는가?”
라는 것이 중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독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먼저 자리를 잡는 것.
이것 자체가 하나의 가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저는
조금 이상한 사업 모델도 상상해봅니다.
예전의 콘텐츠 기업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캐릭터의 권리를 가지고,
게임의 IP를 가지고,
그것을 계속 활용합니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전혀 다른 기업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권리를 팔지 않습니다.”
“그냥 다 풀 겁니다.”
“대신 엄청나게 많이 만들겠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대부분은 잊힙니다.
하지만 그중 하나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합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슬롯머신입니다.
이번에는 개인이 레버를 당기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나 플랫폼 전체가 슬롯머신이 되는 겁니다.
수천 개를 만들고,
수만 개를 만들고,
그중 하나가 터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가 터지는 순간
그것이 문화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창작의 경제학도 조금 이상해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것
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AI로 생산 비용이 계속 내려간다면,
어쩌면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 × 만들어보는 횟수
가 중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한 작품을 오랫동안 완성하는 사람과
수천 개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세상에 던지는 사람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1부에서 이야기했던 AI 슬롯머신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개인이 AI에게
“다음 거 만들어줘.”
라고 하는 것과
기업이 AI에게
“다음 거 천 개 만들어.”
라고 하는 것은
규모만 다를 뿐
어쩌면 비슷한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계속 생성합니다.
계속 던집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걸리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지점에서
조금 묘한 생각이 듭니다.
AI가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결과를
우리는 흔히
slop
이라고 부릅니다.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비슷비슷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소비되는 콘텐츠.
그런데 수천 개의 결과물 중
정말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그것도
그저 수많은 결과 중 하나였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만들고,
또 다른 작품이 그것을 참고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slop이 아닙니다.
새로운 무언가의 기준점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문화는 원래 그런 방식으로 쌓여왔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만든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변형하고,
그것을 본 또 다른 사람이
전혀 다른 것을 만들고,
그것이 다시 다음 세대의 재료가 됩니다.
AI는 단지 이 과정을
엄청나게 빠르게 만들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AI 시대의 창작을 생각하면서
저작권만 바라보면 조금 놓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권리는 중요합니다.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AI가 만드는 비용을 계속 낮춘다면,
앞으로는
“누가 이것을 소유하는가?”
뿐만 아니라
“누가 이것을 세상에 처음 가져왔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누구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는가?”
라는 질문도 점점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AI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점점 쉬워지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만든 것의 권리를 붙잡는 대신
그냥 세상에 전부 풀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살아남아
문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창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언가를 만들어서
그것을 소유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일까요?
혹은
아예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일까요?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AI가 발전할수록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의 중요성은 조금씩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정말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대신
“무엇을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하나의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만드는 비용이 거의 사라진다면,
어쩌면 사람들은
굳이 직접 만들 필요가 없어질 겁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계속 만들겠죠.
AI가 더 좋은 그림을 그려주는데도 그림을 그리고,
AI가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는데도 음악을 만들고,
AI가 더 좋은 코드를 만들어주는데도 코드를 짜고,
굳이 시간을 들여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볼 겁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어쩌면 그 질문이
다음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