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그리고 뜨개질
AI 시대의 뜨개질
앞의 이야기에서
AI가 점점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무언가를 만드는 비용 자체가 굉장히 낮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구현할 수 있고,
수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볼 수도 있고,
그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만약 AI가 정말로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줄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왜 무언가를 만들까요?
저는 이 질문을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뜨개질이 떠올랐습니다.
옷 공장이 있습니다.
기계가 옷을 엄청나게 빠르게 만들어냅니다.
색깔도 다양하고,
사이즈도 정확하고,
가격도 저렴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공장은 더 좋은 옷을 더 빠르게 만들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뜨개질을 합니다.
직접 실을 고르고,
코를 하나씩 만들고,
틀리면 풀고,
다시 뜹니다.
엄청나게 오래 걸립니다.
공장에서 만들면 훨씬 쉽고 싼 옷을
굳이 자기 시간을 들여서 만드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죠.
누군가는 뜨개질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심심해서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줄 선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수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취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이 만든 옷이
공장에서 만든 옷보다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더 튼튼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예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싸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옷에는 다른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만들었다.”
라는 가치입니다.
저는 어쩌면
AI 시대의 창작도 이런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창작을 굉장히 생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합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 작품을 만듭니다.
음악을 만듭니다.
→ 음원을 만듭니다.
코드를 짭니다.
→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글을 씁니다.
→ 콘텐츠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팔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니까
만드는 행위와 결과물이 거의 하나처럼 취급됩니다.
그런데 AI가 결과물을 너무 잘 만들어버리면
이 관계가 조금 이상해집니다.
AI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내가 손으로 그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더 완성도 높은 그림이 나올 수 있습니다.
AI에게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내가 악기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그럴듯한 음악이 나올 수 있습니다.
AI에게 코드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내가 며칠 동안 고민할 일을
몇 분 만에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직접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그때부터 이유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장이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서
뜨개질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AI가 결과물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창작이 사라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창작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걸 직접 만들어야만 얻을 수 있다.”
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이걸 직접 만들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
가 될 겁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그래도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
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이미
이런 행동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는 점점 좋아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을 찍습니다.
요리를 합니다.
식당에서는 훨씬 빠르고 맛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걷습니다.
자동차를 타면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산책을 합니다.
편지를 씁니다.
메시지를 보내면 훨씬 빠릅니다.
그런데 굳이 손으로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효율이 가장 높은 방법만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효율이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AI가 모든 것을 잘 만들게 되는 미래를
꼭 인간에게 나쁜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는
생존을 위한 생산이라는 이유가 너무 많이 섞여 있었으니까요.
돈을 벌기 위해 만들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만들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고,
다른 사람보다 잘 만들기 위해 만들고,
팔기 위해 만들고,
평가받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AI가 그 생산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면
우리는 처음으로
“그냥 만들고 싶어서 만든다.”
라는 선택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겁니다.
AI가 모든 일을 가져간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
일자리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
부가 어떻게 분배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것을
“AI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다.”
같은 이야기로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보다 조금 작은 겁니다.
만드는 행위 자체의 의미가 바뀔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AI가 그림을 아주 잘 그리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어느 날부터는
사람들이 더 이상 AI가 만든 그림을
“AI 그림이라서 별로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무 잘 만들어서
그냥 하나의 그림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AI가 만든 그림을 보고
더 이상 slop이라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냥 좋은 그림입니다.
그림을 만드는 것 자체는
완전히 자동화되어버린 겁니다.
그때 제가 그림을 그린다고 해봅시다.
누군가 저에게 묻습니다.
“왜 직접 그려요?”
“AI가 더 잘 그리는데?”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아요.”
“그런데 저는 직접 그려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그림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일 필요도 없습니다.
새로운 화풍일 필요도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일 필요도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생각했다고 생각한 것도
찾아보면 누군가 이미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이 생각해온 시간이 너무 길잖아요.
그런데도
나는 그걸 이렇게 표현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이 색을 쓰고 싶고,
이 선을 쓰고 싶고,
이 이야기를 붙이고 싶고,
내가 살아온 경험을 여기에 넣고 싶을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아니어도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창작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새로운 음악도
기존의 음악을 듣고 자랍니다.
새로운 그림도
기존의 그림을 보고 자랍니다.
새로운 게임도
기존의 게임을 하면서 자랍니다.
새로운 이야기도
우리가 살아오면서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에서 자랍니다.
완전히 무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계속 만듭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아온 것을 다시 섞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조금씩 바뀝니다.
그래서 저는
AI가 발전할수록
창작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의 의미가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
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AI가 등장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점점 이상해질 겁니다.
AI가 나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왜 만들지?”
그 질문에
“AI보다 잘하기 위해서.”
라고 대답한다면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AI는 계속 좋아질 테니까요.
하지만
“그냥 내가 만들고 싶어서.”
라고 대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그 이유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의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알게 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도 알게 됩니다.
결과물만 얻는 것과
그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같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미래의 창작자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AI에게 전부 맡길 겁니다.
그리고 그게 전혀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AI가 만들어준 결과를
조금 수정할 겁니다.
어떤 사람은 AI와 계속 대화하면서
자기 생각을 다듬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 겁니다.
그림을 직접 그리고,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코드를 직접 짜고,
흙을 직접 만지고,
나무를 직접 깎을 겁니다.
이 사람들이 서로 경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장에서 만든 옷과
뜨개질한 옷이
서로의 존재 이유를 없애지 않는 것처럼요.
공장은 옷을 만드는 방법이고,
뜨개질은
어쩌면 옷을 만드는 동시에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음악에도,
그림에도,
코딩에도,
게임에도,
어쩌면 육체노동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와 로봇이 일을 가져가는 미래가 온다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AI보다 더 효율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AI보다 잘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위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AI보다 빠르게 코딩하기 위해 코딩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생각하고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 좋아서 코딩할 수 있습니다.
AI보다 맛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가지고 놀고 싶어서 음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부터 우리는
크래프팅(crafting)이라는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꾸는 행위.
시간을 들이고,
손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고,
실패하고,
다시 만들면서
자신의 취향과 감각과 생각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
그렇다면 AI가 창작을 끝내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AI가
창작을 생산의 영역에서 조금 꺼내줄 수도 있습니다.
“이걸 만들어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라는 이유에서 벗어나
“이걸 만들고 싶으니까.”
라는 이유로 갈 수 있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세상은 그렇게 깔끔하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미래를 한번 상상해보고 싶습니다.
1부에서는
AI에게 계속 다음 결과를 요구하는
슬롯머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2부에서는
그 슬롯머신이 너무 많은 것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아이디어와 소유와 문화적 기원이 어떻게 달라질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면
결국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직접 만들까요?
저는 아직도
그 답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뜨개질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장에 가면
더 좋은 옷이 있습니다.
더 싼 옷도 있습니다.
더 빨리 만들어지는 옷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앉아서
실을 하나씩 엮습니다.
한 코,
한 코,
천천히.
아마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옷만은 아닐 겁니다.
그 시간을 보낸 자기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AI가 정말로 모든 것을 너무 잘 만들어서
아무도 더 이상
“AI가 만든 것은 별로야.”
라고 말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저는 여전히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아.
그런데 나에게는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이 만든 것이
정말로 세상에 없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누군가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비슷한 그림이 있었을 수도 있고,
비슷한 음악이 있었을 수도 있고,
비슷한 게임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을 수 있습니다.
AI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도
사람은 여전히 만들 겁니다.
아마 훨씬 비효율적으로 만들 겁니다.
훨씬 느리게 만들 겁니다.
가끔은 AI보다 못하게 만들 겁니다.
그런데도 만들 겁니다.
왜냐하면
창작의 목적이 반드시 결과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옷을 만드는 공장이 생겨도
뜨개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AI가 모든 것을 만드는 시대가 와도
창작이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우리는 처음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AI가 대신 정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
각자의 시간으로,
각자의 손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