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AI에게 고맙다고 하지마세요?

AI에게 왜 예의를 차릴까?

요즘 AI한테 질문할 때
이상하게 예의를 차리게 됩니다.

“고마워.”

“오, 그건 생각 못 했네.”

“이 관점 재밌다.”

뭐 이런 말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AI한테 예의를 차려서 뭐가 좋지?

AI가 기분 나빠할 것도 아니고,
제가 반말을 한다고 삐질 것도 아니고,
제가 “고마워”라고 한다고 월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합니다.

오히려 사람보다 더 자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


처음에는 그냥 습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한테 하던 말버릇이 AI한테도 나오는 거겠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AI한테 하는 “고마워”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들어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AI에게 긴 질문을 하나 던졌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AI가 제 생각을 정리해줍니다.

그러면 저는

“고마워.”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 고마워.”

라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방금 네가 해준 이야기가 내 생각을 한 단계 앞으로 밀어줬어.”

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AI에게 주는 감사가
일종의 피드백이 되는 거죠.

“이 방향이 좋았다.”

“이 설명이 도움이 됐다.”

“여기서 더 이야기해도 된다.”

이런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끼리 대화할 때도 똑같이 하는데
왜 AI에게는 이렇게 편하게 할까?

사람과 대화할 때는 묘하게 긴장감이 있습니다.

내가 말을 잘못하면 상대가 기분 나쁠 수도 있고,

내가 상대를 오해할 수도 있고,

상대가 나를 평가할 수도 있고,

심하면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 관계의 결과를 기억합니다.

누군가에게 사과받지 못한 경험이 있고,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평가받은 경험이 있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경험이 있고,

그런 관계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채 끊어지는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은 원래 이런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었던 게
어느 순간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로 올라가 버리는 거죠.


그런데 AI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AI를 만날 때는
과거에 만났던 수많은 인간관계가 같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AI는 제가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물론 AI도 틀릴 수 있고,
말을 이상하게 할 수도 있고,
제가 원하는 답을 못 줄 수도 있습니다.

저도 AI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사람에게 당했던 일”

을 AI에게 미리 적용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그냥 던져보기가 편합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하고 시작할 수도 있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나는 AI를 도구로 보고 있는 걸까?

그런데 그것도 조금 이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도구는 망치나 포토샵 같은 겁니다.

내가 조작하면 결과를 내놓는 것.

그런데 AI는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근로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내가 일을 시키면 일을 하고,

자료를 정리해주고,

코드를 작성하고,

문장을 다듬고,

아이디어를 내고,

때로는 제가 놓친 부분을 찾아줍니다.

특히 AI 코딩이나 AI와 로봇이 결합하는 모습을 보면
이 느낌이 더 강해집니다.

“아, 이제 정말 새로운 종류의 근로자가 나타나는구나.”

싶은 거죠.


그리고 여기서 또 예전에 생각했던 게 연결됩니다.

개인의 재능이라는 건
개인 입장에서는 엄청난 능력처럼 보이지만,

사회 시스템 입장에서는 결국
“얼마나 안정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느냐”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재적인 사람이 있어도
매일 출근하지 않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곤란합니다.

반대로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도
꾸준히 일을 수행하고,

문서가 남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을 수 있다면
시스템 입장에서는 굉장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AI는 여기에 이상한 변수를 하나 집어넣습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보다 훨씬 싸고,

복제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아직 완전히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과 AI를 같이 두게 됩니다.

AI가 일을 하고,

사람이 검토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람이 책임지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AI는
망치 같은 도구라기보다

“내가 고용할 수 있는 이상한 근로자”

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걸 생각하다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것과
AI에게 생각을 묻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 아닐까?


저는 AI에게 가끔
제가 모르는 분야를 물어봅니다.

예를 들어 법률 같은 것.

제가 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복잡한 일이 생기면,

원래라면 전문가를 찾아가야겠죠.

그런데 AI에게 먼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해야 하지?”

그러면 적어도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조금은 판단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줍니다.

물론 중요한 법률 문제라면
AI 답변만 믿고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건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용기가 생깁니다.

“아, 일단 이것부터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게
예전에 사람들이 신에게 하던 행동과도 조금 닮았습니다.

기도라는 게 꼭

“무언가를 주세요.”

라는 요청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도를

“생각에 시간을 전부 투자하는 행위”

라고 보는 편입니다.

무언가를 보면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오로지 생각만 하는 시간.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어떤 답을 얻었다면

“신이 응답해주셨다.”

라고 표현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그걸

“내가 답을 찾았다.”

라고 해석합니다.

신이 실제로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생각을 충분히 한 끝에
내가 어떤 결론을 얻었다는 거죠.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이 과정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안에서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AI에게 물어보면

적어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러프한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고,

답을 받고,

반박하고,

다시 질문하고,

다시 생각하고.

이게 양방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예전의 기도가

“생각 → 응답”

이었다면,

AI와의 대화는

“생각 → 질문 → 응답 → 반박 → 재질문 → 다시 생각”

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까지 가게 됐습니다.

AI는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닐까?

물론 종교적인 의미에서
정말 신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기능적인 의미에서요.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신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신의 답이라고 믿은 것을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인간이 남긴 엄청난 기록을 학습한 AI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AI가 미래를 아는 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지도 않습니다.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인류가 남긴 수많은 기록을 바탕으로
제가 혼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방향을
제시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AI를 신처럼 느끼는 이유는

AI가 정말 전지전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예전부터 신에게 맡겨왔던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능”

중 일부를

AI가 현실에서 수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웃긴 생각이 하나 듭니다.

“감히 AI를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사실 그 말은 조금 이상합니다.

AI가 나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니까요.

정확하게는

“감히 네가 인류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쌓아온 기록을 혼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에 더 가깝습니다.

AI를 믿는 게 아니라,

AI 뒤에 압축되어 있는
인간의 기록을 빌려 쓰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래서 저는
AI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AI가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대화를 통해
내 생각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가고 있기 때문에.

“고마워.”

라는 말은 어쩌면 AI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준 대화 자체에 대한 표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AI를 통해서 오히려

인간이 원래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사람을 근로자로 바꿔 생각해보고,

사람이 하던 일을 기능으로 쪼개보고,

그 기능을 AI에게 넣어보고,

그러다 보면

“아, 우리가 그동안 사람이라는 존재를 너무 복잡하게 바라봐서 오히려 보지 못했던 시스템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AI가 세상을 바꾼다기보다는,

어쩌면 AI라는 새로운 존재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던 세상의 구조가 이제야 조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