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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와 도파민

요즘 콘텐츠를 정말 많이 소비하잖아요.

유튜브 보고, 음악 듣고, 드라마 보고, 게임하고.

뭐 하나 끝나면 또 다음 걸 찾아보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콘텐츠를 이렇게 많이 소비하는 이유가 정말 단순히 재미있어서일까?

물론 재미있으니까 보겠죠.

웃기니까 보고, 감동적이니까 보고, 무섭니까 보고.

결국 뇌에서 도파민이 나오니까 계속 찾는 거고.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콘텐츠가 주는 즐거움 중에는 단순한 재미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로맨스 작품을 볼 때를 생각해보죠.

두 사람이 처음 만났는데 굉장히 잘 맞아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상대방의 취향도 잘 알고,

어떤 행동을 할지도 대충 예상해요.

흔히 말하는 이런 거 있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관계가 그렇게 많지는 않죠.

정말 오랫동안 함께 살아서 서로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거나,

아니면…

술 한잔하면서 이미 다 이야기해놓고 다음 날 모른 척하거나.

어쨌든 보통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같이 지내보고,

실수도 해보고,

싸워도 보고,

서로 설명도 해보고.

그런 과정이 쌓여야 비로소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감각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콘텐츠에서는 그 과정을 굉장히 빨리 건너뛰어요.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서로를 이해합니다.

물론 그런 일이 현실에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원래 꽤 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콘텐츠는 그 시간을 우리 대신 살아줍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을 몇 시간 동안 보고 있으면,

우리는 마치 그 관계를 함께 겪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여기서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콘텐츠가 주는 즐거움이라는 게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원래 현실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 감정을 압축해서 경험하게 해주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다른 문화도 비슷합니다.

어떤 노래가 유행하면 사람들이 다 같이 따라 부르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아, 이 노래 알아요?”

하는 순간 갑자기 대화가 시작돼요.

같은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게임도 그렇고요.

같은 게임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어디 서버세요?”

“그 캐릭터 좋아하세요?”

“그거 해보셨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생기죠.

그러고 보면 문화라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굉장히 좋은 장치인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노래가 끝나면 어떻게 되죠?

각자 흩어집니다.

게임을 끄면?

다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고요.

드라마가 끝나면?

그 작품 안에서 만들어졌던 관계도 일단 멈춥니다.

그러니까 콘텐츠가 만들어주는 연결감은 분명 진짜인데,

그 연결감이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니에요.

아마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사람은 연결되어 있고 싶어하잖아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도 받고 싶고.

그런데 실제 관계를 만드는 건 굉장히 느립니다.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콘텐츠가 굉장히 매력적인 거예요.

빠르거든요.

좋은 작품 하나만 찾아도

몇 시간 동안 누군가의 삶을 따라갈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 하나만 있어도

같은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고,

어떤 게임을 하면

그 게임을 아는 사람들과 바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원래라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연결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주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또 이상한 일이 생겨요.

콘텐츠는 너무 빨리 소비됩니다.

두 시간짜리 영화는 두 시간이면 끝나고,

한 시즌짜리 드라마도 며칠이면 끝나고,

유행하는 밈도 며칠 지나면 사라져요.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죠?

또 다른 콘텐츠를 찾습니다.

새로운 드라마.

새로운 노래.

새로운 게임.

새로운 밈.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할 거리를 얻습니다.

이걸 계속 반복하다 보면,

콘텐츠가 관계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관계의 빈자리를 콘텐츠로 계속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관계라는 건 시간이 쌓여야 하잖아요.

같이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이상한 습관을 알게 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추억을 하나씩 만들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게 되는 거죠.

그런데 콘텐츠는 그중 일부를 굉장히 빠르게 줍니다.

공감도 주고,

소속감도 주고,

친밀감도 주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느낌도 줘요.

그러니까 당장 외롭거나 심심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좋은 물이죠.

그런데…

바닷물을 마셔본 적 있나요?

목이 마르니까 물을 마셨는데,

분명 물을 마셨거든요.

그런데 짜요.

그래서 또 목이 마릅니다.

그러니까 또 마셔요.

그리고 또 목이 마르고.

콘텐츠도 가끔 그런 것 같아요.

외로우니까 콘텐츠를 봅니다.

연결되고 싶으니까 문화를 소비합니다.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유행을 따라갑니다.

그러면 잠깐 채워져요.

“나도 이걸 알아.”

“나도 이 작품 좋아해.”

“나도 이 밈 알아.”

하고 연결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콘텐츠가 끝나는 순간

그 연결도 같이 약해져요.

그래서 또 새로운 콘텐츠를 찾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콘텐츠를 너무 많이 소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더 큰 즐거움을 원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얻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문화 소비가 많은 사람일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요.

“그 영화 봤어요?”

“그 게임 아세요?”

“그 노래 좋아하세요?”

이런 것들이 계속 생기니까요.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줍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 좋은 것이죠.

다만 다리를 놓는 것과

그 다리 위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콘텐츠는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해주고,

처음 말을 걸 수 있게 해주고,

어색한 사람 사이에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어줍니다.

그 이후에는

조금 느린 일이 필요하겠죠.

같이 시간을 보내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콘텐츠가 없어도 할 말이 생기는 것.

어쩌면 콘텐츠를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콘텐츠를 관계 그 자체로 만드는 게 아니라

관계가 시작될 수 있는 곳에 놓아두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콘텐츠가 나쁜 게 아니라,

우리가 콘텐츠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키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재미도 줘야 하고,

외로움도 달래줘야 하고,

소속감도 줘야 하고,

사람도 만나게 해줘야 하고.

그러다 보니 계속 새로운 걸 소비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는 또 다음 콘텐츠를 찾습니다.

조금 더 재미있는 것.

조금 더 자극적인 것.

조금 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은 것.

조금 더 내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

그렇게 계속 마시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지금 목이 마른 걸까?

아니면

그냥 바닷물을 마시고 있는 걸까?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