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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과 목적의 관계

사람을 꿰뚫어 본다는 것

—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사람을 좀 함부로 평가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요즘 사람의 됨됨이를 본다는 게 생각보다 단순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거창한 기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착한지, 얼마나 성실한지,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사람을 보는 데 필요한 건 그 사람이 무엇을 반복해서 선택하는가를 보는 것 아닐까 싶더라고요.


도파민을 쫓는 사람

얼마 전에 도파민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파민이라는 건 원래 목적을 향해 움직이게 만드는 일종의 촉매 같은 역할을 하는데,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그 촉매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게임을 예로 들어보죠.

게임을 해서 재미를 얻고, 그 재미로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현실의 일을 할 힘을 얻는다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게임이 재미있으니까 계속 게임을 하고, 재미가 떨어지면 다른 게임을 찾고, 그것마저 익숙해지면 또 다른 자극을 찾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게임을 하는 목적이 사라지고 게임을 하기 위해 게임을 하는 상태

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건 게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연애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콘텐츠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원래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목적 자체가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즐거움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희노애락 없이 살겠어요.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연애를 하면서 설렐 수도 있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인 것 같아요.

그 즐거움이 끝난 뒤에 무엇을 하느냐.

회복하기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과 게임을 하기 위해 회복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레고, 흥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쌓인 다음에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갈 생각이 있는가.

아니면 설렘이 조금 줄어드는 순간 다음 설렘을 찾아가는가.

저는 여기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그 이후’를 보게 된다

한두 번 게임을 오래 했다고 그 사람을 게임 중독자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힘든 시기에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게임만 할 수도 있죠.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는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 달, 두 달, 몇 년.

계속해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삶의 상당 부분을 계속해서 단기적인 자극을 찾는 데 쓰고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반복적으로 투자하는 곳으로 정의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게 재능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이야기했던 재능에 대한 생각과도 겹칩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재능이 있다.”

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재능이라는 걸 실제로 눈으로 본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건 그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계속 그림을 그린다.

계속 공부한다.

계속 만들어본다.

실패해도 다시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사람은 재능이 있어.”

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재능이란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고정된 기능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관찰된 패턴에 붙인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성도 어쩌면 같은 것 아닐까

“저 사람은 성실해.”

“저 사람은 책임감이 있어.”

“저 사람은 믿을 만해.”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실함이라는 물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책임감이라는 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보는 건 행동입니다.

약속을 지킨다.

맡은 일을 끝낸다.

실수했을 때 핑계를 대기보다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성실한 사람”

이라는 명제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정의한다는 건,

어쩌면

시간을 두고 대상의 패턴을 파악한 다음 그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는 일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그렇게 사람을 패턴으로 정의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죠.

“사람이 변했다.”

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책임감이 없던 사람이 어느 순간 책임감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연애를 설렘 위주로만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관계의 깊이를 생각하게 될 수도 있고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말합니다.

“쟤 사람이 달라졌네.”

사실 이 말은

기존에 관찰하던 패턴이 달라졌으니 기존의 평가를 다시 써야 한다

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는 기능이 아니지만 무엇이 될지는 선택할 수 있다.”

라는 말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평가받지만, 앞으로의 패턴은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통찰력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또 재미있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사람을 꿰뚫어 봐.”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을 꿰뚫어 보는 걸까요?

저는 오히려

엄청나게 많은 패턴을 경험해서 그것을 빠르게 압축할 수 있는 것

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사람을 만난 사람은 1년 동안 봐야 알 수 있는 걸,

사람을 많이 겪어본 사람은 몇 번의 행동만 보고도 비슷한 패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정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속단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합리적인 판단일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실수했을 때

남 탓을 하는지, 자기 책임을 인정하는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걸 저는 한 번 봤다고 그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장면을 수천 번 본 사람이 있다면,

어떤 한 장면에서 과거의 수많은 사례가 떠오를 수 있겠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런 방향으로 가더라.”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통찰력의 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질문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관찰만으로 사람을 파악하려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사람의 일상은 반복적이니까요.

회사에서 1년을 봤다고 해도 내가 아는 건 그 사람의 회사 생활 패턴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친구와 있을 때 어떤 사람인지, 가족과 있을 때 어떤 사람인지, 실패했을 때 어떤 사람인지, 돈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이런 건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 질문이 필요해집니다.


“오늘 날씨 좋네요.”

이런 질문은 쉽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만의 패턴을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게 뭐예요?”

이런 질문은 꽤 재미있습니다.

누군가는 집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부모님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가 살짝 드러납니다.

또,

“최근에 제일 후회했던 선택이 뭐예요?”

라고 물으면 실패에 대한 태도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볼 때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 뭐예요?”

라고 물으면 그 사람이 타인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도 보일 수 있습니다.


인터뷰라는 것도 결국 같은 구조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갑자기 인터뷰가 연결됩니다.

우리는 인터뷰를 보통

“정보를 얻는 행위”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인터뷰는

패턴을 드러내는 행위

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인터뷰 질문은 단순히 사실을 묻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질문을 던집니다.

“가장 힘들었던 프로젝트가 뭐였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는 프로젝트 정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실패했을 때 누구를 탓하는지,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 보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것을 후회하는지.

이런 것들이 같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질문은 어쩌면

시간을 압축하는 도구

일 수도 있습니다.

1년 동안 지켜보면 알 수 있는 패턴을 30분의 대화로 완벽하게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여러 환경을 빠르게 건드려볼 수는 있는 거죠.


그리고 평판이 생긴다

여기서 또 하나가 연결됩니다.

한 사람이 반복해서 보여준 패턴을 한 명이 평가하면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비슷한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 사람은 약속을 잘 안 지켜.”

“나도 그렇게 느꼈어.”

“나도.”

이게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 하나의 이미지가 붙습니다.

평판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평판은 굉장히 재미있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은 관계가 계속 유지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변하는 모습도 사람들이 계속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패턴이 나타나면 “사람이 변했네.” 라는 재평가가 비교적 쉽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나쁜 평판을 가진 사람은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이후에 아무리 변해도 그 변화를 볼 사람이 없습니다.

이게 어쩌면

쌓아 올리는 건 어려운데 무너지는 건 쉽다

는 말을 설명해주는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평판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평판을 만든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그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달할 통로도 같이 끊어지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결국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의 반복을 보고,

그 반복에서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가지고 다시 미래의 행동을 예측합니다.

재능.

인성.

성실함.

신뢰.

평판.

성격.

어쩌면 이것들은 전부 조금씩 다른 영역에서 관찰된 패턴에 붙은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을 잘 본다는 것도 결국 그 패턴을 많이 본 사람의 능력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을 오래 지켜봐야 합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 비슷한 패턴을 가진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 행동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런 결과를 내더라.”

라는 개인적인 통계가 생깁니다.

그 통계가 충분히 쌓이면 관찰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고 “어떻게 저걸 한 번에 알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한 번의 행동 뒤에는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봐온 수많은 사례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제

사람을 꿰뚫어 본다

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나타난 행동에서 장기간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 패턴을 추정하는 능력.

그게 통찰력의 한 형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틀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예외를 만들고, 사람은 변하니까요.

그래서 좋은 통찰은 확신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설

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본 패턴으로는 이 사람을 이렇게 이해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후의 행동이 그 가설을 깨뜨린다면 기꺼이 다시 평가하는 것.

어쩌면 사람을 보는 눈이라는 건 사람을 빨리 단정하는 능력이 아니라,

패턴을 빠르게 발견하면서도 새로운 패턴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충분히 관찰하고, 좋은 질문을 던지고, 패턴을 발견하고, 그 패턴을 통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시간 속에서 반복해서 선택해온 것들의 흔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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