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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가 정말 문제인걸까?

쇼츠에 대한 생각

요즘 콘텐츠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게 있죠.

“요즘 사람들은 쇼츠 때문에 집중력이 짧아졌다.”

저도 예전에는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쇼츠가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바꾼 게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그렇게 변하고 있었고, 쇼츠가 그걸 제일 먼저 보여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이야기 구조를 배울 때는 보통 이런 식이잖아요.

도입이 있고,

전개가 있고,

위기가 있고,

절정이 있고,

결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콘텐츠를 보면 어떻습니까?

시작하자마자 결론부터 말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그리고 나서야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단순히 쇼츠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짧으니까.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붙잡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긴 영상에서도 점점 많이 보인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10분짜리 영상이라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긴 영상도 처음부터 핵심을 던지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가설을 세워봤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이미 맥락을 빠르게 파악하도록 훈련받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긴 글을 읽는다고 해도,

시험을 볼 때 우리가 하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긴 지문이 나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이 글이 뭘 말하는 거지?”

하고 핵심을 찾아냅니다.

문제에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고,

앞뒤 맥락을 파악하고,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걸 잘하면 점수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긴 맥락 속에서 핵심을 빠르게 추출하는 능력에 보상을 받아온 셈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봅니다.

그러면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래서 이 영상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를 먼저 찾게 되는 게 아닐까요?


두 번째는 제가 예전에 이야기했던 도파민에 대한 문제입니다.

저는 도파민을 반드시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파민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좋은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도파민을 얻기 위한 행동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하나 끝냈습니다.

그러면 다른 게임을 찾습니다.

그 게임이 질립니다.

그러면 영화를 봅니다.

영화가 끝납니다.

유튜브를 봅니다.

유튜브가 질립니다.

쇼츠를 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콘텐츠를 찾습니다.

계속해서 다음 자극을 찾는 겁니다.

저도 게임을 굉장히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게임 하나를 꽤 오래 붙잡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게임 자체가 질려버리면,

그 다음에는 다른 게임을 찾기보다는 아예 다른 걸 했습니다.

예를 들면 Blender를 공부했습니다.

원래 3D를 공부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게임처럼 즉각적으로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재미가 있었습니다.

뭔가 하나씩 배워가고,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이 생겼습니다.

저한테는 그게 일종의 조용한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다니는 방식도 있을 겁니다.

이쪽이 훨씬 편하죠.

콘텐츠가 너무 많으니까요.

지금은 내가 지칠 때까지 새로운 자극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계속되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속도 자체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콘텐츠의 구조를 너무 잘 압니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보면 그냥 이야기를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아, 여기서 떡밥을 뿌리는구나.”

“여기서 반전 나오겠네.”

“이건 유튜브 초반 후킹이구나.”

“이 장면은 쇼츠로 잘라 쓰겠네.”

이런 걸 어느 정도 알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콘텐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보고 있는 겁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일종의

‘한 단계 올라간 소비자’​입니다.

평가 방식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평가를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MBTI를 예로 들어도 그렇습니다.

MBTI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은 이런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으니까 이런 유형입니다.”

라고 하면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MBTI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면 이 유형이 나오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평가의 구조를 알게 된 순간,

평가받는 사람의 행동 자체가 달라지는 겁니다.

저는 콘텐츠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미 기승전결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보면서

“그래서 언제 전개되는 거야?”

“언제 위기가 오는 거야?”

“언제 반전이 나오는 거야?”

를 찾습니다.

이야기를 경험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분석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쇼츠를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쇼츠가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쇼츠가 이런 소비 방식이 실제로 통한다는 걸 가장 먼저 보여준 것 아닐까?

숏폼에서 사람들이 본론부터 말하는 영상을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오고,

그걸 본 다른 콘텐츠 제작자들이

“그러면 긴 영상에서도 이렇게 해볼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일반적인 가로형 영상에서도

처음부터 결론을 보여주고,

핵심을 던지고,

그다음에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쇼츠는 원인이라기보다,

가능성을 확인해준 실험장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쇼츠가 아무 영향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쇼츠는 이 흐름을 엄청나게 가속했을 겁니다.

문제는 쇼츠 하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순간,

우리가 놓치는 게 있다는 겁니다.

왜 사람들이 쇼츠에 그렇게 잘 반응했는가?

왜 본론부터 말하는 방식이 먹혔는가?

왜 사람들은 다음 영상을 계속 찾게 되는가?

이걸 생각해보면,

어쩌면 쇼츠 이전부터 이미

우리의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교육을 통해 핵심을 빠르게 찾는 법을 배우고,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고,

콘텐츠의 문법을 익히고,

알고리즘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콘텐츠를 읽는 사람이 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쇼츠는 그 사람들에게 굉장히 잘 맞는 형식이었을 뿐이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쇼츠 때문에 사람들이 집중력을 잃었다”

라는 말보다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핵심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면 쇼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눈앞에 보여준 하나의 증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계속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지칩니다.

그때 누군가는 또 다른 쇼츠를 찾고,

누군가는 다른 게임을 찾고,

누군가는 영화를 찾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공부를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게임이 지겨워졌을 때 Blender를 켰습니다.

그때는 재미를 포기한 게 아니라,

재미의 종류를 바꾼 것에 가까웠습니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파민을 없애자”가 아니라,

어쩌면

내가 지금 어떤 종류의 즐거움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쇼츠가 나쁜가?

좋은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쇼츠를 없앤다고 해서 이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겁니다.

쇼츠가 사라져도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

콘텐츠를 읽는 방식,

그리고 즐거움을 찾는 방식이 그대로라면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쇼츠를 보면서

쇼츠 자체보다,

쇼츠를 보고 있는 우리를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